그런데 왜? · EP.01일론 머스크는 왜 미국의 모든 땅을 사버리지 않을까?
일론 머스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그의 재산은 이미 웬만한 국가의 연간 경제 규모와 비교될 정도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머스크는 왜 그 많은 돈으로 미국의 땅을 전부 사버리지 않을까?
땅은 한정되어 있다. 주식은 새로 발행할 수 있고 기업도 새로 만들 수 있지만, 뉴욕 맨해튼 한복판의 땅을 새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돈이 많은 사람이 땅을 계속 사들이면 언젠가는 모든 땅의 주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을 통째로 사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2026년 10월 초 포브스가 추산한 머스크의 순자산은 약 9,360억 달러였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000조 원이 훌쩍 넘는 규모다.
그런데 미국의 전체 토지 면적은 약 22억 7,000만 에이커, 약 918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2026년 농장 부동산의 평균 가치는 에이커당 약 4,500달러다. 여기에 미국 전체 토지 면적을 단순히 곱하면 약 10조 달러가 나온다. 머스크의 재산보다 열 배 이상 큰 금액이다.
물론 실제 미국 땅값을 이런 방식으로 계산할 수는 없다. 농지 평균 가격에는 농장 건물의 가치도 포함되어 있고,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의 땅은 농지보다 훨씬 비싸다.
무엇보다 미국 땅의 약 28%는 연방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국립공원이나 군사시설처럼 개인이 자유롭게 사들일 수 없는 땅도 많다.
돈이 충분하다고 모든 땅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가정해 보자.
머스크가 미국의 모든 땅을 살 만큼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리고 모든 토지 소유자에게 땅을 팔라고 제안한다.
과연 모두가 팔까?
누군가는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 팔겠지만, 누군가는 평생 살아온 집을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어떤 기업은 사업을 위해 반드시 그 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자발적인 거래라면 소유자가 팔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거래는 성립하지 않는다.
게다가 머스크가 땅을 대규모로 사들이기 시작하면 남아 있는 땅의 소유자들은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할 수 있다.
처음에는 10억 원에 살 수 있었던 땅도 마지막 한 조각만 남으면 100억 원을 요구할지 모른다.
재산의 시장가격을 모두 더한 금액과 그 재산을 실제로 전부 사들이는 비용은 다르다.
그런데 굳이 모든 땅을 살 필요가 있을까?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땅을 소유한다고 반드시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땅 1만 평보다 뉴욕 중심가의 작은 건물 하나가 더 많은 임대수익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토지의 가치는 단순한 면적보다 위치와 활용도, 그곳에서 발생하는 경제활동에 크게 좌우된다.
머스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땅을 매입하는 데 수천억 달러를 사용한다면 그 돈으로 새로운 공장을 짓거나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할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 매년 재산세와 관리비도 부담해야 한다.
더구나 머스크의 재산 대부분은 현금이 아니라 기업 지분이다. 땅을 사기 위해 대규모로 주식을 매각하면 세금과 시장가격, 기업 지배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아무리 부자라도 모든 자산을 땅에 투자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부자가 땅을 계속 사들인다면?
그렇다고 이 질문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머스크 한 사람이 미국의 모든 땅을 사들이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수많은 부자가 오랜 기간에 걸쳐 땅을 축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임대주택 100채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는 매달 임대료를 받는다. 생활비를 제외한 수익으로 새로운 주택을 구매한다. 시간이 지나면 100채가 110채가 되고, 다시 120채가 될 수도 있다.
반면 집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매달 임대료를 지급한다. 소득에서 주거비를 제외하고 남는 돈이 적다면 새로운 자산을 축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구조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산을 가진 사람은 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으로 더 많은 자산을 사들이고, 자산이 없는 사람은 노동소득의 상당 부분을 자산 소유자에게 지급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투자 손실도 발생하고, 새로운 주택도 건설되며, 세금과 경쟁이 자산 축적을 제약한다. 모든 부자가 계속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다음 자산을 취득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땅은 일반적인 상품과 조금 다르다.
자동차가 비싸면 구매하지 않을 수 있다. 명품 가방이 비싸면 다른 제품을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은 어딘가에서 살아야 한다.
주택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소유한 집에 임대료를 지급해야 한다. 기업도 사무실과 공장, 물류시설을 운영하려면 공간이 필요하다.
토지는 경제활동의 기본적인 기반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재산을 보유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토지 소유자라고 해서 마음대로 임대료를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대체 가능한 공간이 많다면 경쟁을 해야 하고, 법률과 세금, 각종 규제도 적용된다.
그러나 특정 지역의 토지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대체할 수 있는 공간마저 부족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토지 소유는 경제적인 협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누가 세상을 소유하게 될까?
머스크가 미국의 모든 땅을 사버리지 않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그럴 만큼의 돈이 없고, 모든 토지가 매물로 나와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수익성 높은 투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의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더 흥미로운 문제가 남는다.
한 사람이 모든 땅을 소유할 수는 없더라도, 소수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가치 있는 토지를 소유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들은 임대료와 사업수익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축적한 자본으로 다시 토지와 기업을 매입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이 자산을 소유하게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소유가 점점 더 집중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집과 땅, 기업과 생산시설의 상당 부분이 소수의 소유로 집중된다면?
모든 거래가 합법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더라도, 그 결과가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별도로 생각해 볼 문제다.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땅을 사들이는 것보다, 세상의 땅이 점점 더 적은 사람의 소유가 되는 과정이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땅은 유한한데, 왜 개인의 소유에는 한도가 없을까?
다음 이야기땅은 유한한데 왜 소유에는 한도가 없을까?사유재산과 토지 독점의 경제학
목록으로
그런데 왜? · EP.02땅은 유한한데 왜 소유에는 한도가 없을까?
한 사람이 아파트 100채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는 매달 임대료를 받고, 남은 돈으로 새로운 아파트를 구매한다. 시간이 지나 100채가 200채가 되고, 다시 500채가 된다.
그런데도 법이 허용하고 세금을 납부한다면, 주택을 추가로 소유할 수 있다.
여기서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
자동차나 스마트폰은 공장에서 계속 만들어낼 수 있지만, 땅은 그렇지 않다. 특히 사람들이 모여 살고 싶어 하는 지역의 토지는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한정된 자원을 누군가가 끝없이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땅은 누가 처음 소유했을까?
우리가 땅을 사고파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이상한 질문이 생긴다.
최초의 땅 주인은 누구였을까?
오늘날에는 토지의 소유권이 등기와 법률에 따라 이전된다. 그러나 인류가 처음부터 땅에 가격표를 붙여 거래했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토지는 공동체가 함께 이용하거나, 권력자가 지배하거나, 관습적인 규칙에 따라 점유하고 사용해 왔다. 개인이 토지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다.
현대의 사유재산 제도는 이렇게 형성된 다양한 소유관계를 법적으로 정리하고 보호하는 체계다.
이 제도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내가 어떤 땅을 소유하고 있고, 그 권리가 보호된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 위에 집을 짓거나 공장을 세울 수 있다.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드는 투자도 가능해진다.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면 누가 건물을 관리하고, 누가 시설을 개선하며, 투자 결과를 누가 가져갈 것인지 결정하기 어렵다.
재산권은 단순히 부자가 재산을 지키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장기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기도 하다.
그런데 땅은 다른 재산과 다르다
예를 들어 내가 빵집을 운영한다고 해보자.
빵이 잘 팔리면 생산량을 늘리거나 새로운 빵집을 열 수 있다. 경쟁자도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 강남역 앞의 땅은 다르다.
수요가 아무리 늘어나도 강남역 바로 앞의 토지를 무한히 만들어낼 수는 없다.
물론 기존 건물을 높게 짓거나 지하공간을 개발하면 같은 땅에서 더 많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도시의 교통망이 발전하면 기존에 외곽으로 여겨지던 지역의 가치가 높아질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특정 위치의 토지 자체가 복제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경제학에서는 토지를 다른 생산요소와 구분하기도 한다.
노동자는 교육을 통해 기술을 익힐 수 있고, 기업은 공장을 추가로 건설할 수 있다. 하지만 토지의 물리적 공급은 근본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만든 물건을 소유하는 것과는 다른 경제적 의미를 갖는다.
가만히 있었는데 땅값이 오른다면?
어떤 사람이 20년 전 1억 원에 땅을 샀다고 해보자.
그동안 땅에는 아무것도 짓지 않았다. 농사를 짓거나 사업을 운영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주변에 지하철역이 생기고, 학교와 병원이 들어서고, 기업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그 땅의 가치는 10억 원이 됐다.
토지 소유자는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았지만 자산가치는 9억 원 증가했다.
물론 모든 땅값 상승이 이런 방식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소유자가 직접 개발하거나 위험을 감수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례에서는 땅값 상승의 상당 부분이 주변 사람들의 경제활동과 공공 인프라 투자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증가한 9억 원은 누구의 몫이어야 할까?
토지를 소유한 사람이 모든 이익을 가져가는 것이 정당할까? 아니면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가치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할까?
19세기 경제사상가 헨리 조지는 바로 이 문제에 주목했다.
그는 토지 소유자가 직접 만들어내지 않은 지대, 즉 토지의 입지와 희소성 등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에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 토지가치세(Land Value Tax)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땅을 많이 소유한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걷으면 될까?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소유할 수 있는 토지나 주택 수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은 주택을 최대 3채까지만 보유하도록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서울의 고가 주택 1채를 가진 사람과 지방의 저렴한 임대주택 10채를 가진 사람 중 누가 더 많은 부동산 자산을 소유하고 있을까?
단순히 주택 수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또한 주택을 많이 보유한 사람이 기존 주택을 사들여 소유만 이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직접 새로운 주택을 건설해 공급을 늘리는 경우도 있다.
두 행위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다르다.
그래서 경제학에서는 주택 수에 따른 중과세 외에도 토지 자체의 가치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을 논의한다.
토지가치세는 토지와 그 위에 세워진 건물을 구분해, 토지의 가치에 과세하는 방식이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개선했다고 해서 토지 자체에 대한 세금이 증가하지 않도록 설계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건축과 같은 생산적인 투자를 상대적으로 덜 위축시키면서 토지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지대에 과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현실에서는 토지와 건물의 가치를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세 부담이 갑자기 증가하는 소유자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세금이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거래했다면 문제없을까?
조금 더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해 보자.
어떤 부자가 작은 마을의 땅을 하나씩 구매하기 시작한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 자신이 만족할 만한 가격을 받고 땅을 판매했다. 강요나 사기는 없었다. 모든 거래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30년이 지나자 마을의 땅 대부분이 그 사람의 소유가 됐다.
이제 주민들은 그가 소유한 집에서 살고, 그가 소유한 건물에서 장사하며, 그가 소유한 토지를 이용해야 한다.
물론 주변에 다른 지역이 있고 자유롭게 이사할 수 있다면 소유자의 힘은 제한될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와 교통, 생활 기반이 이 마을에 집중되어 있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비용이 매우 크다면?
주민들은 법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누구도 그들에게 특정 집에 살거나 특정 건물에서 일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경제적인 선택지는 상당히 제한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드러난다.
개별 거래가 모두 자발적이었다는 사실이, 그 거래들이 만들어낸 최종적인 소유 구조까지 반드시 공정하거나 바람직하다는 것을 의미할까?
이 질문에는 간단한 정답이 없다.
재산권과 자발적 거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합법적으로 취득한 재산에 대한 소유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반면 경제적 기회와 실질적인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소유가 지나치게 집중되면 다른 사람들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두 관점은 서로 다른 가치를 강조한다.
소유권은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할까?
사실 현대 사회에서도 재산권이 무제한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땅이라고 해서 어디에나 원하는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용도지역과 건축규제, 환경규제를 따라야 한다.
공공의 필요에 따라 토지가 수용될 수도 있으며, 이런 경우에는 법률이 정한 요건과 보상 문제가 뒤따른다.
즉, 현대의 재산권은 절대적인 지배권이라기보다 법과 제도 속에서 보장되는 권리에 가깝다.
토지를 소유할 자유와 다른 사람들이 토지에 접근할 기회는 언제나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사회는 소유권을 어디까지 보장하고, 어떤 제한을 두며, 토지에서 발생한 경제적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결국 문제는 땅의 수가 아닐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땅을 얼마나 많이 가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더 중요한 것은 소유한 면적이나 주택 수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땅을 100만 평 소유했더라도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지역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반면 도시의 핵심적인 토지와 기반시설을 소수의 소유자가 통제한다면, 상대적으로 작은 면적으로도 상당한 경제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결국 토지 소유 문제는 단순히 재산의 크기만이 아니라 그 재산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우리는 재산권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보호한다. 하지만 재산이 지나치게 집중된다면, 어떤 사람의 재산권이 다른 사람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자유가 충돌할 때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할까?
그리고 소유의 집중이 특정 개인을 넘어 거대한 금융기관과 기업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땅을 사들일 수는 없어도, 금융시장을 통해 수많은 사람의 자본이 소수의 기관에 집중될 수는 있지 않을까?
다음 이야기월가는 세상을 소유할 수 있을까?블랙록, 뱅가드 그리고 자본의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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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 EP.03월가는 세상을 소유할 수 있을까?
블랙록, 뱅가드 그리고 자본의 집중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연금에 넣는다. 연금은 펀드를 사고, 펀드는 여러 기업의 주식을 산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업의 주인은 돈을 낸 사람들인 것 같다.
그런데 기업의 주주 명단을 보면 블랙록과 뱅가드 같은 거대한 자산운용사의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한 기업에서만 보이는 것도 아니다. 서로 경쟁하는 기업의 주주 명단에도 같은 이름이 올라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긴다.
우리 돈으로 주식을 사는 회사가, 언젠가는 세상의 기업을 모두 소유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한 회사가 모든 주식을 관리한다면?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보자.
세상에 기업이 100개 있고, 사람들은 모두 노후 자금을 한 자산운용사에 맡긴다. 그 운용사의 펀드는 100개 기업의 주식을 조금씩 사들인다.
몇십 년이 지나자 펀드는 모든 기업의 주요 주주가 된다.
주식을 산 돈은 수많은 사람이 낸 것이다. 주가가 오르거나 배당이 나오면 그 이익도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기업이 이사를 선임하거나 중요한 안건을 표결할 때, 누가 그 주식의 표를 행사할까?
투자자들이 의결권을 운용사에 맡겼다면, 한 회사가 수많은 투자자를 대신해 여러 기업에서 투표할 수 있다.
이 운용사가 기업들을 마음대로 지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주주도 있고, 경영진과 이사회도 있으며, 운용사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펀드와 고객의 계약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도 투자로 얻는 이익은 널리 나뉘어 있는데, 그 투자에 딸린 의사결정은 한곳에 모일 수 있다. 이 사고실험은 바로 그 차이를 보여준다.
블랙록과 뱅가드는 얼마나 클까?
규모부터 확인해 보자.
블랙록이 발표한 2026년 9월 말 운용자산은 약 15조 5,000억 달러다. 뱅가드가 공개한 2026년 3월 말 운용자산은 약 11조 9,000억 달러다. 기준 날짜는 다르지만, 두 회사 모두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자산을 관리한다. 블랙록 2026년 3분기 실적 발표, 뱅가드 운용자산 자료
숫자만 보면 블랙록이 15조 5,000억 달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운용자산’은 회사가 자기 돈으로 소유한 재산을 뜻하지 않는다. 고객이 맡긴 자산까지 포함한 규모다. 그 안에는 주식뿐 아니라 채권과 현금성 자산 등도 들어 있다.
내가 펀드에 투자한 돈을 블랙록이 운용한다고 해서, 내 투자금의 가치가 모두 블랙록 주주의 재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익과 손실은 원칙적으로 투자자가 부담한다. 운용사는 자산을 관리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돈의 주인과 돈을 굴리는 사람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주 명단에서 같은 이름이 반복되는 이유
코카콜라와 펩시코의 2026년 주주총회 자료를 보자.
코카콜라는 뱅가드의 지분을 8.61%, 블랙록의 지분을 7.28%로 기재했다. 펩시코 자료에도 두 회사가 각각 10.1%, 8.2%의 주요 주주로 나온다. 이 수치는 각 회사가 이전에 제출된 지분 공시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므로, 지금 이 순간의 보유량과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두 경쟁 기업의 주주 명단에 같은 운용사가 올라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코카콜라 2026년 주주총회 자료, 펩시코 2026년 주주총회 자료
왜 이런 일이 생길까?
한 가지 큰 이유는 인덱스펀드다. 인덱스펀드는 특정 기업 하나를 골라 투자하기보다, 정해진 지수를 따라 많은 기업의 주식을 함께 산다. 넓은 시장에 투자하는 펀드라면 서로 경쟁하는 기업의 주식도 모두 담을 수 있다.
투자자에게는 장점이 있다. 어느 한 기업이 실패하더라도 다른 기업의 성과로 손실을 줄일 수 있고, 시장 전체에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투자할 수도 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각자 분산 투자할수록, 그 돈을 관리하는 대형 운용사의 이름은 더 많은 주주 명단에 등장한다.
EP.02의 마을에서는 한 사람이 땅을 하나씩 사들였다. 금융시장에서는 다른 경로가 가능하다. 사람들이 각자의 돈을 한곳에 맡기면서, 그 돈을 관리하는 기관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이다.
같은 주주가 경쟁 기업 양쪽에 있다면?
여기서 경제학적인 질문이 생긴다.
코카콜라에만 투자한 사람은 코카콜라가 펩시코의 고객을 빼앗으면 이익을 볼 수 있다.
반면 두 기업에 모두 투자한 사람은 생각이 조금 다를 수 있다. 한 기업의 이익이 다른 기업의 손실로 상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를 공동소유라고 부른다. 일부 연구자들은 경쟁 기업에 같은 대형 투자자가 참여하면 기업 간 경쟁이 약해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항공업계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공동소유와 항공권 가격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공동소유와 항공업계 경쟁에 관한 연구
하지만 주주 명단에 같은 이름이 있다는 것만으로 기업들이 가격을 함께 올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운용사가 여러 기업에 투자한다는 사실과, 각 기업의 경영진이 경쟁을 줄이기로 결정한다는 사실 사이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실제로 다른 연구는 항공업계 자료를 분석한 뒤 공동소유가 가격을 높였다는 증거가 약하다고 결론 내렸다. 항공업계 공동소유 효과를 재검토한 연구
따라서 공동소유는 살펴볼 만한 문제지만, 경쟁 약화가 이미 입증된 결과인 것처럼 다룰 수는 없다.
소유 지분과 의결권도 같은 것이 아니다
한 가지 구분이 더 필요하다.
앞서 본 펩시코 자료는 뱅가드를 지분 10.1%의 주요 주주로 기재한다. 그런데 그 자료의 주석을 보면, 근거가 된 지분 신고에서 뱅가드가 보고한 *단독 의결권*은 0주였다. 공시상 지분율 10.1%를 뱅가드가 모든 안건에서 혼자 행사할 수 있는 표 10.1%로 읽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펩시코 2026년 주주총회 자료
운용사의 영향력을 알려면 숫자 하나보다 더 많은 것을 봐야 한다.
누가 투자 수익을 받는가? 누가 주식을 사고팔 수 있는가? 이사 선임과 주주 제안에는 누가 투표하는가? 운용사는 기업 경영진과 어떤 대화를 나누는가?
이 권한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지만, 언제나 한 사람이나 한 기관에 모두 모여 있지는 않다.
투자자가 직접 투표하면 해결될까?
블랙록과 뱅가드는 고객이 펀드가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 행사 방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넓히고 있다.
블랙록에 따르면 2026년 6월 말 기준, 약 3조 9,600억 달러의 주식 인덱스 운용자산이 이런 선택권의 대상이었고, 그중 약 9,230억 달러에 해당하는 고객이 실제로 선택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블랙록 의결권 선택 프로그램
뱅가드는 2026년 9월 발표에서 약 4조 달러의 자산이 프로그램 대상이며, 참여 투자자는 50만 7,000명, 참여 자산은 약 1,510억 달러라고 밝혔다. 두 회사의 프로그램과 집계 기준은 같지 않으므로 숫자를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뱅가드 2026년 투자자 의결권 참여 자료
선택권이 생기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투자자가 맡겼던 의결권의 일부에 다시 자신의 뜻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저절로 풀리지는 않는다. 수백 개 기업의 이사 후보와 주주 제안을 매번 검토하기는 쉽지 않다. 투자자는 미리 마련된 투표 방침 중 하나를 고를 수도 있고, 운용사의 판단에 계속 맡길 수도 있다.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과, 많은 사람이 그 권리를 직접 행사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렇다면 월가는 세상을 소유하고 있을까?
블랙록과 뱅가드가 관리하는 돈을 모두 두 회사 자신의 재산으로 계산한다면 답을 잘못 찾게 된다. 그 돈에는 수많은 개인과 연금, 기관의 자산이 들어 있다.
반대로 “고객 돈일 뿐”이라고 말하며 운용사의 힘을 무시해도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여러 기업의 주식을 큰 규모로 관리하고, 위임받은 표를 행사하며, 기업 경영진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경제적인 영향력이다.
그 영향력이 언제나 고객의 뜻과 같을까? 고객들끼리 의견이 다를 때는 누구의 뜻을 따라야 할까? 경쟁 기업 양쪽에 투자한 운용사가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그 결정을 평가해야 할까?
EP.01에서는 한 사람이 모든 땅을 사들이기 어려운 이유를 살펴봤다. EP.02에서는 소유가 집중될 때 다른 사람의 선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물었다.
금융시장에서는 소유가 더 복잡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돈을 낸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그 돈에 딸린 결정은 소수의 기관에 맡겨질 수 있다.
그러므로 “월가가 세상을 소유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단순한 예·아니요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세상의 기업에 투자한 사람이 점점 많아질 때, 그 기업에 영향을 미칠 권한도 함께 넓게 나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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